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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길에 미즈타니가 나를 불렀다.
"아이스크림 사 줄게."
유치원생도 넘어가지 않을 사탕발림이었다.
물론 난 언제나 배고프고 용돈이 부족한 고등학생이므로 넘어갔지만....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미즈타니가 사 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봉지를 뜯고 편의점 쓰레기통 앞에서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들고 서 있었다. 잘 먹을게. 하고 무뚝뚝하게 감사를 표하는 나를 보고 미즈타니는 웃으며 먼저 아이스크림을 한입 물었다.
요즘 부쩍, 녀석의 '이유 없는 친절'이 늘었다.
매점 앞에서 만나면 빵을 사주겠다 그러고, 자판기 앞에서 만나면 음료수를 사주겠다 그런다. 연습하다가 목이 마르다 싶으면 먼저 달려가 물을 가져오고, 돌아가는 길에 피곤하다고 투덜대면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나서서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도대체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아이스크림 한턱 또한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미즈타니가 길 건너편의 놀이터를 지목했다.
"저기서 잠깐 놀고 갈까?"
"피곤해 죽겠는데 놀이터는 무슨... 우리가 애냐?"
"그냥 가서, 얘기나 하자고."
"하루 종일 봤는데 무슨 얘기를 또 해? 집에 갈래."
"우와, 너무 한다. 내가 아이스크림까지 사 줬는데..."
"허..? 이깟 게 얼마나 한다고 조건을 갖다 붙여?"
그래도 얻어 먹은 게 있으니 시무룩해지는 녀석을 보고 거절하지 못해 놀이터까지 따라갔다. 미끄럼틀도 정글짐도 너무 작아서 흥미를 돋우진 못했다. 우린 시소에 걸터앉아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의미 없이 앉았다 일어서기를 번갈아 반복해 본다.
말없이 싱글싱글 웃으며 날 보기만 하는데 아주 답답해 죽을 것만 같다. 내 입장에선 녀석에게 해 줄 말이 없고, 나눌 말도 없었다. 그렇다고 미즈타니처럼 마주 보며 싱글거릴 생각 또한 없었다. 이게 뭔그림이여, 싶었다. 어둑어둑한 놀이터에서 다 큰 남자 고등학생 두 명이 말 없이 시소를 타고 있는 모습이라니, ....쪽 팔리잖아?!
"너 나한테 뭐 빚진 거 있냐?"
"무슨 소리야?"
"요즘 나만 보면 왜 자꾸 뭘 사주려고 해? 내가 그렇게 배고파 보이냐?"
"그냥 이즈미 보면 사주고 싶었을 뿐이야."
"뭐야, 그거. 그만둬. 무서워.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신종 이지메냐?"
시소가 멈췄다. 미즈타니가 벌떡 일어선 채로 생각에 잠겼다.
"그냥, 잘해 주고 싶으니까."
내 질문의 답이랍시고 내놓은 것 같지만 그 대답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전혀 명쾌하지 못했다.
일그러져가는 내 표정을 보더니 미즈타니는 설명을 덧붙이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냥, 이즈미한테 잘해 주고 싶은 것뿐이야.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고, 좋은 거 있으면 나눠 하고 싶고, 재미있는 거 보면 생각나고, 그래서 말해주고 싶고, ....이상한 건가?"
이상한 것 같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뭐냐 그게. 작업 거냐?"
그 질문에 미즈타니는 그냥 웃었다. 그것은 어딘지 낯간지러웠다.
그날 이후에도 미즈타니의 '잘해주고 싶으니까'의 연속이었다. 녀석은 여전히 매점 앞에서 빵을 사주고, 자판기 앞에선 음료수를 사 줬다. 앞머리가 흐트러졌다며 바로 잡아 주기도 하고, 뺨에 뭐가 묻었다며 손을 갖다 대기도 했다. 슬슬,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짐을 느꼈다.
"제발 좀! 그만하라고!"
그렇게 몸부림쳐봤자, 소용없었다. 녀석은 여전히 낯간지럽게 웃으며 절대 그만두지 않았다.
"이즈미 우리 영화 보러 가지 않을래?"
그 말과 함께 불쑥 나에게 내밀어 진 것은 요즘 인기몰이 중인 러브스토리였다.
나는 땀 냄새 나는 부실에서, 땀 냄새 나는 부원들 사이에 파묻혀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뭐냐 이건. 데이트냐?"
미즈타니는 대답 없이 웃어넘겼다. 그 모습은 나를 끝없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즈타니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마는 것도, 어째서인지 나 혼자 초조해하는 것 같은 이 상황도, 결국은 받아들고 만 이 영화 표도, 무엇하나 이해되지 않았음에도 결국 나란히 걷게 되는 우리 두 사람도, 녀석의 호의가 마냥 싫지만은 않은 이 심리도!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이 상태는 아주 오래도록 유지되며 제자리걸음만을 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었다. 그것은 또다시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찜찜함의 고리 속에서 헤매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나는 무엇이든 분명한 것이 좋았고, 확실한 이유를 가진 것이 좋았다. 미즈타니의 '잘해주고 싶으니까' 같은 어정쩡한 레벨의 이유가 아닌, 보다 뚜렷한 그런 이유를 말이다.
먼저 부실 밖으로 사라진 녀석을 뒤쫓아가 잡았다.
"너 나 좋아하냐?"
노골적이지만 진지하게 물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네가 날 좋아하는 거잖아? 싶었으니까.
녀석은 처음엔 무슨 소리냐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가 계속해서 시선이 부딪히자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미즈타니의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고, 고개가 숙여지며 나에게 잡힌 팔은 힘이 빠진 듯 무겁게 처졌다. 그리고 그 반응은 전염되듯 나에게 번졌다. 나는 잡았던 녀석의 팔을 거칠게 놓아 주었다.
"그럼 그렇다고 처음부터 말하란 말이야!"
괜히 나까지 민망해지니까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녀석은 나의 반응에 어깨를 움찔하고 떨더니 겁 없이 맞받아쳤다.
"그런 말을 어떻게 하냐?!"
"못할 게 뭐가 있어! 숨기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래! 좋아해!! 좋아한다고!! 됐냐? 이제 됐어?!!"
"됐어!!! 됐다고!!"
우리는 서로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그래서 이젠 어쩔 건데?! 나랑 사귀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몰라, 그러든지."
"무슨 대답이 그래??"
"진짜 모르겠으니까 그렇지! 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 같다고!"
"그럼 영화 보러 가는 날 데이트라도 해?!"
"그래, 해보지 뭐!"
"좋아!"
"그래!"
우리는 그렇게 담판을 짓듯 등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녀석은 이미 온데간데없다. 컴컴한 운동장에 덩그러니 홀로 남자 저절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주저앉게 된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데이트? 데이트라니? 누구하고? 내가? 우리가? 미즈타니랑 내가?!
"우아아아악!!"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괴성이 내 목소리를 가지고 터져 나왔다.
친구들이 다 떠난 부실 속에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렵게 엉덩이를 뗐다. 이미 한밤중이 되어버린 길 위를 자전거를 끌며 터벅터벅 걷게 된다. 어딘지 엎질러진 물 같은 전개였지만 결국 모든 것이 명확하게 되었다. 일단, 그 사실 하나만은 후련했다. 그래, 가슴 속의 갑갑함과 초조함이 훅하니 날아간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이 된다.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영화? 까짓 거 보면 되지. 데이트? 하면 될 거 아냐. 사귀자고?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어째서인지 갈수록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어가는 듯도 했지만,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미즈타니였다.
[우리 오늘부터 1일인 거임?]
순간 휴대폰을 패대기치고 싶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에 열이 몰렸다. 왜 열이 몰리는지는 몰랐다. 그냥 화끈화끈 했다.
나는 자전거에 올라타, 온 힘을 다 실어 페달을 밟았다.
에라이, 젠장. 될 대로 돼라지!!
집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쉬기 어려웠고, 전신이 열에 들떠 뜨거웠으며, 심장이 벅차올라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그날은 우리의 1일이 되어버렸다.
사랑일지도 모르는 35제 - 31. 意地っ張り (고집부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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