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을 때, 나는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이즈미군, 이거 보여요? 자... 그럼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면 따라서 시선을 움직여 보세요. 자아, ...네, 좋습니다. 이즈미군,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
"...선생님."
"응?"
".... 이즈미, 가 ...제 이름인가요?"
눈을 뜨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눈꺼풀이 무거워서 눈을 뜬다는 것이 귀찮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를 괴롭히는 귓가에서 웅성대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망막 너머에서부터 파고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부심에 견디지 못해 눈을 떴더니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나를 내려다보던 선생님의 입가에 환하게 번지는 미소를 알 수 있었고, 나는 그 미소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꼭 따라 웃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호흡기를 통해 숨을 내 쉬는 것만으로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으므로 아쉽지만 웃어 보일 수는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며칠간은 호흡기 신세를 져야만 했지만 나는 차츰 내 몸이 회복하고 있는 것을 직접 실감하고 있었고 마침내 호흡기를 떼고 병실을 옮길 수가 있었다. 시간만이 흐르는 동안 내 곁에는 늘 부모님과 형이 함께 있어 주었다.
완고해 보이지만 눈매가 약해 보이는 아버지, 상냥하지만 기가 세 보이는 어머니,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형.
한숨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나에겐 가족이 '생겼다'.
[이즈미 코우스케]
그것이 내 이름이라고 했다.
이즈미 코우스케...
그립게 울리는 것을 보면 그것은 확실히 내 이름인 것처럼도 느껴졌다.
병실을 옮기고 곧 병문안이 가능해졌고 친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클래스메이트라는 친구도 있었고, 같은 야구부 멤버라는 친구도 있었다. 야구부라, 나는 내 포지션이 무엇이었냐 물었을 때의 그 친구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잠시 침묵한 뒤, 내 포지션이 중견수였다고 얘기 해 주었다. 내심 '투수'가 아니라는 것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기억을 잃은 나는 사실 야구에 대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잘 기억나지 않으니까 투수가 제일 그럴듯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친구들은 방과 후에 찾아와서 잠시 수다를 떨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열심히 정보를 들려주고 돌아가곤 했다. 오랜 시간을 머무르진 않았다. 어느 정도 떠들고 나면 정보는 줄어들게 되어 있고, 나는 아무리 그것들을 머릿속에 입력시켜 보아도 아무런 자극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가면 그제야 늘 한발 늦게 찾아오는 친구도 있었다.
"내 이름은 미즈타니 후미키야. 이즈미의 친구였어."
그에 관한 것 역시 아무것도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녀석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이즈미'라는 '내 이름'은 무척이나 그리운 향기를 품었다. 누구보다 그립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했다. 그저 막연히, 이상하다고 느꼈다.
"대충은 느낌으로 알아. 낯익다던가, 낯설다던가, 그런 기분이 들거든. 그런데 너는 굉장히, 낯이 익은 기분이 들어."
그런 말을 했을 때 그는 놀라움을 언뜻 내보이며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가 웃으면 나는 왠지 항상 낯부끄러웠다. 두 귀가 뜨거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 버리기도 했다. 이런 내 행동이 스스로 기분 나쁘게까지 느껴졌다. 나는 이 녀석을 보고 있으면 괜히 부끄러웠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리도 부끄러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너와 나는 많이 친했어? 어쩌다 알게 된 사이야? 학교 친구야? 너도 야구 해? 우린 얼마나 친했어? 나는 네가 무척......
미즈타니와 나 또한 항상 대화를 했다. 하지만 그 대화가 다른 친구들의 대화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우리 둘의 대화의 대부분은 나의 질문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유독 그와의 대화에만 적극적이 되었다.
"이즈미하고 나는, 응, 많이 친했었어. 항상 집에 갈 때도 함께 돌아가고 그랬는걸. 주말엔 가끔 서로의 집에 놀러 가서 만화책도 보고 비디오도 보고 가끔은 영화관에 영화도 보러 가고. 응. 남자애 둘이서 말이야. 우린 그런 거 신경 안 썼어. 이즈미하고는 반이 다르지만 야구부에서 만나게 되었어. 나는 실수가 참 잦았는데 이즈미는 나와 반대로 언제나 완벽했었지. 그래서 나는 이즈미가 많이 부러웠었고, 자랑스러웠어. 우린 많이 친했어. 많이, 많이 친했어. 나는 이즈미가 무척, 좋았어."
부끄러운 소리를 잘도 하는 친구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낯설지 않다니 다행이야.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해. 다른 아이들은 낯설다면서, 나만 낯이 익다고 말해주는 게 무척이나 신기해."
"어째서? 너랑 나는 많이 친했다면서? 그러면 그렇게 이상할 일도 아니잖아."
"....응. 하지만 나는 이즈미가, 나를 기억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 했어"
"..어째서?"
미즈타니는 그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바보 같은 미소가 '아무것도 아니야'하고 대답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이 왠지 화가 나서, "꼭 기억해내 보이마." 선언을 했더니, 이번에도 역시나 바보 같은 미소로 '응' 하고 대답하는 듯 보였다.
어머니께 부탁해서 앨범을 받았다. 갑자기 앨범을 찾았더니 어머니는 내가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집에 있는 모든 앨범을 가져와 주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내가 필요했던 것은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서의 사진일 뿐이었다. 가족에 관해선, 솔직히 별로 생각해내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기억이 있던, 없던, 그들이 내 가족이라는 것은 이미 의심할 여지없이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사진을 보았다. 내 주위엔 많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함께 찍은 사진의 대부분은 같은 얼굴들이 찍혀 있었다. 내 양옆으로는 '미하시'와 '타지마' '하마다'가 함께 하고 있었다. 가끔은 야구부 전체가 찍혀 있는 사진이나 유니폼을 입고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 등이 남아 있기도 했다. 조금씩 '낯익은 감각'이 신기하게도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넘쳐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 속에서 이상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있었다. 어째서인지 사진 속에서 미즈타니만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야구부 사진 속에서도, 다른 사진 속에서도 그가 찍힌 사진은 한 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상한 점은 유난히 혼자 찍힌 사진이 많다는 것이었다. 혼자 찍혀 있음에도 정중앙이 아닌 옆으로 치우쳐져 찍혀 있는 사진이 이상할 정도로 많았던 것이다. 그 사진들의 초점은 절대 나를 가리키고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게 전해지는데도 그 속엔 나만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이 없음에도 그 사진들이 가져오는 위화감은 상당히 기묘한 느낌이었다.
"엄마, 혹시,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친구, 기억해?"
"집에? 글쎄... 한두 명이 왔어야 말이지."
"왜, 꼭..."
막상 미즈타니를 설명해 보려니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새로 쌓아 올린 이미지조차도 다시 떠올리기가 힘이 들 정도로 희뿌연 이미지만이 재생되어 더더욱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설명한다고 뭐가 달라질까도 싶었다.
"...음. 됐어."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꽃병에 꽃을 담았다.
"어째서 너랑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건지 모르겠어."
그날도 미즈타니는 다른 이들보다 한 걸음 늦게 병실로 찾아왔다. 녀석이 찾아왔을 때, 나는 한쪽 구석에 치워 두었던 앨범을 꺼내 보이며 사진을 뒤적여 보였다. 이것 봐. 이렇게 사진이 많은데, 네가 찍힌 사진은 한 장도 없어. 너랑 굉장히 친했다면서, 왜 너만 없는 거야? 그렇게 묻고 싶었다. 미즈타니는 내 물음을 목소리로 전해듣지 않았음에도 내가 무엇을 묻고 싶어하는지 알겠다는 듯 내 곁에 다가와 무릎 위에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어 보았다. 그리곤 나 혼자 찍힌 사진을 유독 열심히 쳐다보는 듯했다.
그래, 너도 그 사진들이 이상하게 보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날아왔다.
"심하다. 이즈미.."
"에?"
"너, ...너 설마."
"으,응..?"
"....나랑 찍은 사진만 찢어버렸거나 그런 거 아냐?? 너 항상 나만 보면 바보 같고 답답해서 마음에 안 든다고 얼마나 투덜댔는데. 우와, 그렇다고 사진까지 없애버리냐. 너 정말, ..."
"....그런 거 아냐!"
당황해서 강하게 부정해 보았다. 하지만 기억상실증인 내가 강하게 부정한들 자기변호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놀리듯이 나를 공격하는 녀석에게 맞서며 부정했지만, 기억이 없으니까 자꾸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는 자기변호일 뿐이었다. 티격태격하는 사이 먼저 웃음을 터트린 것은 미즈타니 쪽이었다. 씩씩거리며 변호하는 내 모습이 꽤나 웃겼던 모양이었다.
"하하하핫..."
눈가에 눈물까지 맺혀가며 웃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초조해 있었던 듯한 기분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혼자서 찍힌 기묘한 사진의 공간이, 유독 그 빈 공간 속에서 느껴지던 쓸쓸함이, 그의 웃음소리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 소식을 듣고 아베가 찾아왔다. 다른 친구들을 대신해 대표로 상태를 보러 왔다는 그였다. 어째서 주장인 하나이가 안 오고 네가? 싶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누가 와도 상관없었다. 아베는 병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곧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앨범으로 손을 뻗었다.
"뭐야. 너 사진 같은 것도 찾아봤냐? 어때? 기억은?"
"전혀. 그런데 뭐.. 너희들이랑 부모님께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나는 이대로도 괜찮지 않나 싶고.."
"..허.. 여유로구만. 하긴, 넌 원래 그렇게 터프한 성격이야. 기억은 잃어도 본성은 어디 버리지 못했구만."
"그건 욕이냐?"
"칭찬."
아베는 짧게 대답하곤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나 혼자 찍혀 있는 사진을 꺼내 들더니, 역시나 "..뭐야 이건. 형편없는 솜씨군." 하고 쓴소리를 뱉었다.
"그런데 있지.."
"응?"
"나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난 왜 미즈타니랑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냐?? 너도 없어?"
정말로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미즈타니 말대로 찢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사진을 찍지 않았을 뿐이면서 나를 놀리기 위해 미즈타니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아베는 사진을 보던 시선을 나에게로 옮겼다.
"....미즈타니?"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야? 그건."
아베가 돌아가고 나서 한참 뒤에 미즈타니가 병실을 찾아왔다. 곧 퇴원이라며? 축하해. 하고 웃었다. 나는 그를 원망하듯 노려보았다. 미즈타니는 나의 노려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그냥 나를 향해 서 있을 뿐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넌 누구야."
미즈타니는 내 질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아베한테 물어봤더니 자기 반엔 너 같은 애 없대. 우리 팀에도 미즈타니 후미키라는 녀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군. 그럼. 넌 대체 누구야?"
"나는, 미즈타니야, 이즈미. 1학년 7반이고. 니시우라 야구부 멤버인."
"...하지만, 아베는."
"아베가 기억 못 할 뿐이야. 이즈미."
....무어라 답할까 고민하는 사이를 담담한 어조로 그가 메웠다.
"그들은 이즈미와 마찬가지로, 나를 잊었을 뿐이야."
"그날도 이즈미와 나는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내가 또 뭔가 너를 화나게 했었나 봐. 그래서 화가 난 너는 나와 나란히 달리는 것을 못마땅해했어. 너는 나 보고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눈치가 없어서, 네가 정말로 화를 내는지도 모르고, 그래도 내 딴엔 네 기분을 풀어주려고... 네 뒤를 따라 밟았어. 너는 더더욱 오기가 생겼는지 페달을 밟는 속도를 올렸고, 뒤따라오는 나를 돌아보며 따라오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지. 그때였어. 갑자기 이즈미가, 내 눈앞에서 날아오른 거야. 크게, 높이. ...그리고 굉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어."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몸이 튕겨 오른 감각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경위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즈미는 나 때문에 사고를 당한 거야."
지금의 이야기로 보면 그건 미즈타니 탓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사과를 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미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 화가 나서. 슬프고 아파서..."
굴곡 없이 사고의 경위를 설명해 주던 미즈타니의 시선은 계속 땅을 향한 채였다. 그는 나를 보려 하지 않은 채, 그저 내 앞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이어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잠기더니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즈타니는 고개를 숙였다. 두 손을 꼭 쥐었다.
"미안해. 이즈미.. 미안해 이즈미.."
그렇게 말하는 그는 이미 이곳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그날, 그 현장, 그곳에서 울고 있는 것이었다.
"이즈미! 눈 좀 떠봐!! 이즈미!!!"
소년은 차마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피범벅이 되어 나가떨어진 친구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끌어안고 그저 소리만 질러댈 뿐이었다. 이렇게 크게 부르면 감긴 눈이 뜨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 꼭 닫힌 입이 '시끄러워' 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나무라지 않을까 싶어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해를 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저 흔들고 소리치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싫어. 안돼. 이건 꿈이야.."
현실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소유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소년은, 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즈미를 살려주고, 나를 죽여주세요. 하고 빌었어."
"바보 아냐?"
"...응. 바보였어. 고작 그 정도로 이즈미를 살려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이 녀석과 가까이 지내면서도, 어째서 이 녀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지,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죽는 것 만으로는 이즈미를 살려낼 수 없었어. 내 목숨은 이즈미의 생명과 맞바꾸기엔 모자라는 거였어. 너를 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 나는 이즈미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려도, 상관없을 것 같았어."
나는 이 바보스러움이, 너무 싫으면서도, 치가 떨리게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병실에는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이것이 정말로 해가 져서 깔린 어둠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어둡게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뭔가 욕이라도 쏘아주고 싶은데, 머리통을 사정없이 때려주고 싶은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잠시 시간을 두고, 내가 처음으로 한 말은 절대로 묻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
"쓸쓸하지 않았어?"
"......"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이, 쓸쓸하지 않았어?"
"쓸쓸했어."
".....넌 바보야."
"외로웠어."
"바보라고 욕할 가치도 없어 너 같은 놈한텐"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즈미가 나를 보고, 낯이 익어. 라고 말해 준 것이 훨씬 기뻤어."
"......구제불능."
"응."
".....병신새끼."
미즈타니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감촉이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가 나를 만질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왜 울어?"
"안 울게 생겼냐 이 자식아!!!"
내 머리를 쓰다듬던 아쉬움 가득한 그 손길이 순간 멈췄다. 올려다보았더니 일그러진 시야 속에서 미즈타니가 웃고 있었다.
"넌 내가 우는 게 기쁘냐??"
미즈타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지금의 이즈미는, 나를 기억하는 이즈미잖아.
기뻐.
.
.
.
.
.
한가롭게 커튼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 바람의 기분 좋음을 만끽하며 내 시선은 줄곧 창밖을 향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 생각이 없는지도 몰랐다.
"코우! 너 내 말 듣고 있니?!"
"....에?"
아, 또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었다. 어머니가 '또냐' 하고 질렸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기억을 되찾고 나서 이렇게 딴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의사 선생님은 곧 사라질 증상이라고 얘기 했지만, ...이거 원. 과연 언제 익숙해 질는지.
어머니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그래서 뭐? 무슨 얘기 하는 중이었는데?"
"너 내일 퇴원하잖니. 그래서 오랜만에 집 음식 먹는데 뭐가 먹고 싶냐고.."
"아아.. 뭐, 난. 아무거나.."
"또, 또. 아무거나가 제일 어렵다니까!"
"하핫.."
아들 퇴원한다고 벌써부터 식단 걱정이야? 우리 엄마 귀엽네.. 싶어서 고개를 돌리다가, 절로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병실문으로 시선이 가 멈췄다. 닫혀 있는 문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흘렸다.
"오늘은 안 오네..."
"응?"
어머니는 내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더니 물었다.
"누가 말이니?"
....어?
"....어라? 그러게. 엄마, 오늘 누구 오기로 한 사람 없었지?"
"......너 정말 눈뜨고 꿈꿨니? 애가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아하하.. 미안. 부작용 같은 건가??"
"...허이구. 꿈은 그만 꾸고 이거나 먹어봐라."
어머니는 적당히 무시하며 불쑥 사과 한쪽이 찔려진 포크를 내밀며 얘기했다.
"너 사과 좋아해서 사와 봤어. 달대. 한번 먹어봐."
나는 군말 없이 내밀어 진 그것을 받아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오오.."
"맛있지?"
"응. 다네..."
순식간에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한 그 맛이,
"너무 달아서 목이 간지럽다..."
이유모를 그리움과 닮아 있는 달콤함이, 혀끝에서 몽롱하게 맴돌았다.
사과를 먹는 동안 자꾸 시선이 나도 모르게 문을 향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이즈미' 하고 그리운 울림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꿈 꿨나 봐."
"응?"
"으응. 아냐. 맛있네"
꼭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